세상사는 이야기

마흔에 만난 5월의 눈꽃

그살장 2026. 5. 8. 09:28
마흔에 만난 5월의 눈꽃

마흔에 만난 5월의 눈꽃

어릴 적 내 기억 속의 봄은
연분홍 벚꽃이 흩날리면 서둘러 문을 닫았다
꽃비 내린 아스팔트 위로
봄은 늘 아쉬움만 남기고 떠나는 줄 알았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마흔의 굽이
초여름으로 향하는 오월의 거리를 걷다
예전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새로운 하얀 빛과 기적처럼 마주친다
해가 저문 저녁 밤
노란 가로등 불빛 아래 서면
초록 나뭇가지 위로 소복하게 내려앉은 눈꽃들은
어둠 속에서도 조용히 하얀 빛을 낸다
어릴 적 골목길에선 만나지 못했던 그 나무가
이제는 지친 퇴근길 위를 포근히 덮고 있다
화려하게 피었다가 이내 지고 마는 꽃이 아니라
고단한 하루를 가만히 위로하듯
따뜻한 하얀 쌀밥 한 그릇처럼 피어난 이팝나무
젊은 날엔 알지 못했던 이 수수하고도 깊은 위로가
가로등 아래 짙어진 도심 한가운데서
나의 익숙한 밤풍경을 완전히 바꾸어 놓는다
벚꽃만 봄인 줄 알았던 지난날을 지나
이제야 비로소 오월의 넉넉한 아름다움이 보인다
어두운 밤에도 오래 곁을 지키며 빛나는
이팝꽃 그늘 아래서
나의 봄은, 그리고 나의 시간은
다시 깊고 새롭게 피어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