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국의 균열

왕국 이후 — Episode 04중국의 금맥

그살장 2026. 7. 3. 11:04

 

왕국 이후 — Episode 04

중국의 금맥

왕국은 하루아침에 세워지지 않는다. 그러나 균열은 그럴 수 있다.

장르: 법정 스릴러 / 비즈니스 드라마 약 6,500자
오전 11:20 · 서초구 가사법원 제3호 조정실

첫 조정 기일이었다.

긴 테이블의 한쪽에 강현준과 박정우가 앉았다. 반대편에 서윤아와 이수현. 가운데는 조정위원 두 사람. 창문 너머로 가을 하늘이 보였다. 조용하고 서늘한 방이었다.

서윤아는 강현준 쪽을 보지 않았다. 강현준은 서윤아 쪽을 보지 않았다. 두 사람의 시선은 같은 테이블 위 어딘가에 머물렀다. 교차하지 않았다.

조정위원장이 개요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양측이 자료를 제출하고, 기업가치 감정이 진행되고, 기여도를 다투게 된다는 절차적 안내였다. 목소리는 건조했다. 이 방에서 수백 번 했을 안내였다.

"양측, 오늘은 쟁점 정리만 합니다. 의견 있으시면."

박정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피고 측은 분쟁 자산의 범위 확정을 먼저 요청합니다. 혼인 전 취득한 지식재산권과 혼인 이후 형성된 기업가치를 명확히 분리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이수현이 받았다.

"원고 측은 그 분리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입장입니다. 현 기업가치의 핵심 수익 구조는 혼인 기간 중, 공동으로 설계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강현준은 그 말을 들으며 손가락을 테이블 아래에서 꽉 쥐었다.

핵심 수익 구조. 그 말이 가리키는 게 무엇인지 나는 안다. 2003년 그 회의록. F2P. 아이템 과금. 중국 시장. 윤아가 제안했고, 내가 손으로 적었다. 그 모델이 지금 회사 매출의 뼈대가 됐다.

조정위원이 다음 기일을 잡았다. 오늘은 거기까지였다. 회의는 삼십 분 만에 끝났다.

나가는 길, 복도에서 두 사람은 처음으로 시선이 마주쳤다. 0.5초. 어느 쪽도 먼저 눈을 피하지 않았다. 그리고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 ✦ ✦
회상 — 2007년 3월 · 베이징, 첫 서비스 오픈 당일
[ 19년 전 ]

숫자가 올라가고 있었다.

베이징 파트너사 사무실 대형 모니터에 실시간 접속자 수가 표시되고 있었다. 0명에서 시작했다. 오픈 5분 후 1,000명. 10분 후 5,000명. 30분 후 2만 명.

강현준은 말이 없었다. 서윤아도 말이 없었다. 파트너사 직원들이 환호하며 서로 악수했다. 그 사이에서 두 사람만 조용히 화면을 보고 있었다.

한 시간이 지났다. 접속자 수 12만 명.

"현준아."

서윤아가 조용히 불렀다.

"응." "됐다."

현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뿐이었다.

저녁에 파트너사 CEO가 만찬을 열었다. 큰 식당, 원형 테이블, 돌아가는 음식들. 건배가 이어졌다. 강현준은 잔을 들었다 놨다를 반복했다. 술을 마시지 않았다. 서윤아가 옆에서 중국어로 대화를 이어갔다. 웃었다. 분위기를 살렸다.

만찬이 끝나고 호텔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현준이 말했다.

"감사하다는 말을 해야겠다. 오늘." "나한테?" "중국어 협상 처음부터 네가 다 한 거잖아. 만찬도. 오늘 분위기도."

서윤아는 창밖을 바라봤다. 베이징의 밤거리가 흘렀다.

"우리가 한 거지." "..." "됐어. 자자."

택시 안에 침묵이 내렸다. 좋은 침묵이었다. 지쳐서가 아니라, 할 말이 없어도 괜찮은 사람 옆에서만 가능한 침묵이었다.

── 이후 6개월 ──
[ 2007년 9월 — 같은 해 ]

숫자는 계속 올라갔다.

크로스로드 (중국 서비스) — 6개월 지표
누적 가입자 8,300만 명
일 평균 접속자 (DAU) 620만 명
월 매출 (추정) 약 240억 원
중국 PC방 점유율 # 1 (38.4%)

회사의 몸집이 달라졌다. 직원이 열두 명에서 여든 명이 됐다. 사무실을 이전했다. 강남 사무실. 층이 올라갔고, 유리 창이 커졌다. 강현준의 명함에 대표이사라는 직함이 생겼다.

그리고 조용히, 서윤아의 이름이 회의록에서 줄어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녀도 몰랐다. 아니, 알았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회사가 커지면 역할이 나뉘는 것은 당연했다. 자신은 초기 사업 개발을 담당했고, 이제 전문 경영인들이 들어오는 단계였으니까. 자연스러운 변화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중요한 파트너 미팅에서 자신이 빠져 있었다.

"이번 미팅은 내가 들어가도 돼?"

강현준이 잠깐 머뭇거렸다.

"전략팀에서 다 준비했어. 괜찮아."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중국 파트너는 내가 관계 맺은 데잖아." "이제 회사 규모가 달라. 개인 관계로 운영하던 시대는 지났어."

서윤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현준은 이미 서류를 들고 회의실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것이 첫 번째 균열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그래서 더 깊은.

── 현재로 ──
오후 02:15 · 여의도 법무법인 이수 집무실

이수현은 타임라인을 화이트보드에 그리고 있었다.

2002년 창업 — 2007년 중국 대박 — 2012년 결혼 — 2020년대 메타버스 확장 — 현재 소송.

그 선 위에 붉은 점을 하나 찍었다. 2007년 9월. 서윤아가 처음으로 핵심 파트너 미팅에서 배제된 시점.

"여기서부터 봐야 해요." 이수현이 서윤아를 돌아봤다. "성공 이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이게 '기여 종료'가 아니라 '기여 배제'였다는 걸 보여줘야 합니다."

서윤아가 화이트보드를 바라봤다.

"차이가 있나요?"

"큰 차이가 있어요." 이수현이 마커를 내려놓았다. "기여 종료면, 2007년 이후는 기여가 없었다고 해석될 수 있어요. 하지만 기여 배제라면, 계속 기여하고 싶었지만 시스템에서 밀려났다는 거예요. 법원은 그 차이를 봅니다."

2007년 9월 이후 서윤아의 공식 직함: 미등기 이사 → 고문 → 사실상 배제. 같은 기간 강현준의 지분율은 단독 의결권 확보 수준으로 정리됨.

서윤아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2007년. 그때 자신은 서른두 살이었다. 회사가 처음으로 정말 크다고 느껴지던 해. 그리고 처음으로 자신이 작아지는 것을 느꼈던 해.

내가 물러선 게 아니었다. 밀려난 거였다. 그때는 그 차이를 몰랐다. 아니, 알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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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04:40 · 광화문 법무법인 JW 회의실

박정우가 자료를 펼쳤다.

"2007년 이후 서윤아 씨의 공식 역할을 정리해야 합니다. 우리 쪽 논리는 이겁니다. 그녀는 창업 초기 기여자였지만, 회사가 전문 경영 체계로 전환되면서 자발적으로 물러난 거다. 강요가 아니라 선택."

강현준은 들었다. 표정이 없었다.

"자발적으로 물러난 게 아닙니다."

박정우가 멈췄다.

"대표님."

"내가 뺐어요. 내가 판단했어요. 회사가 커지면서 역할이 재편돼야 한다고, 내가 결정했어요."

잠깐의 침묵.

"그 결정이 옳았다고 생각하십니까?"

강현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창밖을 봤다. 광화문 광장에 저녁이 깔리고 있었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당시 회사에 필요한 결정이었습니다. 그 판단은 지금도 바꾸지 않아요. 하지만..."

그가 말을 멈췄다.

"하지만?"

"그게 당사자에게 어떻게 느껴졌는지는, 내가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박정우는 펜을 내려놓았다. 이 말을 법정에서 해서는 안 됐다. 그러나 막을 수도 없었다.

22년 경력. 이 말이 나오는 순간을 나는 안다. 상대를 이기고 싶은 마음이 흔들리는 것. 강현준은 지금 변호사가 필요한 게 아니라 다른 무언가가 필요한 사람이다. 그게 뭔지는, 아마 본인도 모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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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 — 2008년 2월 · 강남 사무실
[ 18년 전 ]

서윤아는 짐을 쌌다.

공식적인 퇴직이 아니었다. 직함은 여전히 이사였다. 그러나 출입증이 리뉴얼되면서 그녀의 이름 옆에 붙은 접근 가능 구역 목록이 줄어 있었다. 전략회의실. 기술개발팀. 핵심 미팅룸. 모두 접근 불가.

작은 일이었다. 그러나 작은 일들이 쌓이면 큰 일이 된다.

강현준이 사무실로 들어왔다.

"뭐 해?" "개인 물건 정리해. 책상 좀 바꿔야 할 것 같아서."

현준이 그녀의 책상을 봤다. 비어가고 있었다. 작은 화분 하나, 사진 액자 하나.

"그냥 두면 되는데." "그냥 두면 뭐가 달라져?"

서윤아가 조용히 물었다. 높지 않은 목소리였다. 그래서 더 날카로웠다.

강현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그때, 대답했어야 했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물어봤어야 했다. 또는, 접근 불가 목록을 원래대로 돌려놨어야 했다. 그 중 어느 것도 하지 않았다.

"점심 시간에 아래층 식당 갈 건데."

그는 그 말만 하고 나갔다.

서윤아는 빈 박스를 들여다봤다. 화분과 액자. 5년이 이것뿐이었다.

그녀는 액자를 열었다. 사진이 들어 있었다. 2002년 겨울. 성수동 오피스텔. 현준이 자고 있는 옆에서 자신이 노트를 쓰고 있는 사진. 누가 찍어준 건지도 기억나지 않는 사진이었다.

액자를 박스에 넣었다. 그리고 박스를 들었다.

그날 그녀는 몰랐다. 그게 끝의 시작이라는 것을. 또는,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 현재로 ──
저녁 07:30 · 한강 수변 산책로

서윤아는 혼자 걸었다.

조정 기일이 끝난 뒤, 사무실로 돌아가지 않고 걸었다. 한강 둔치. 저녁 바람이 강에서 불어왔다. 가을이었다.

강 건너편으로 불빛들이 켜지고 있었다. 저 빛들 중 하나가 37층일 것이다. 지금 현준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회의를 하고 있을까. 아니면 자신처럼 어딘가를 걷고 있을까.

핸드폰이 울렸다. 이수현이었다.

"어디 계세요?"

"한강이요."

"혼자요?"

"네."

잠깐의 침묵.

"오늘 조정에서 강현준 대표 표정 보셨어요?"

서윤아는 걸음을 멈췄다.

"... 보지 않으려고 했어요."

"봤으면 좋았을 텐데." 이수현의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표정이 없는 사람이 아니더라고요. 감추는 사람이에요. 두 개는 달라요."

서윤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내일 다시 만나요. 5화 증거자료 준비해야 합니다."

전화가 끊겼다. 바람이 왔다. 강물 위로 가을이 지나갔다.

감추는 사람. 이수현의 말이 맴돌았다.
그래. 그 사람은 항상 감췄다. 기쁠 때도, 무너질 때도.
나는 그것을 냉정함이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모르겠다.

서윤아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한강은 어두웠고, 불빛들은 흔들렸다.

✦ ✦ ✦
다음 화 예고 — 5화: 달라진 온도

2012년, 두 사람은 결혼했다. 회사가 궤도에 오른 직후였다. 그러나 결혼은 관계의 회복이 아니라, 이미 멀어진 두 사람이 형식으로 묶인 사건이었다. 왜 그때 결혼했는가 — 그 질문의 답이 이 소송의 성격을 바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