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온도
두 사람이 결혼한 건 2012년이었다. 두 사람이 멀어지기 시작한 건 그보다 훨씬 전이었다.
이수현은 서윤아 앞에 질문지를 내밀었다.
"오늘은 결혼 전후 얘기를 해야 합니다. 불편하더라도."
서윤아는 질문지를 내려다봤다. 빼곡한 항목들이었다. 결혼 동기, 혼인 당시 재산 현황, 혼인 후 생활 방식, 재산 형성 기여 내역. 법률 문서의 언어로 쓰여 있었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낯설었다. 자신의 삶이 이 칸들 안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
"왜 2012년에 결혼했는지부터요."
서윤아는 잠깐 멈췄다.
"쉬운 질문이 아니네요."
"쉬운 질문이면 제가 묻지 않았을 거예요."
서윤아는 창밖을 보았다. 한강이 보였다. 잔잔했다.
"회사가 처음으로 안정됐을 때였어요. 2010년 넘어서 수익이 예측 가능해졌고, 현준이가 처음으로 주말에 쉬었어요. 그때 프로포즈를 했어요."
"강현준 대표가요?"
"네. 레스토랑에서. 반지도 있었어요." 서윤아의 입꼬리가 조금 올라갔다가 내려왔다. "그땐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회사가 우리 사이에서 비켜나면, 우리가 다시 가까워질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렇게 됐나요?"
서윤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얀 꽃이 많았다.
서윤아는 거울 앞에 앉아 있었다.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분을 두드렸다. 창밖으로 봄 햇살이 들어왔다. 좋은 날이었다.
들러리로 온 친구가 말했다.
"윤아야, 왜 안 웃어." "웃고 있어." "그게 웃는 거야?"서윤아는 거울을 봤다.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다. 하지만 친구 말이 맞았다. 그것은 기쁨의 웃음이 아니었다. 결심의 표정이었다.
식이 시작됐다. 버진로드. 강현준이 앞에 서 있었다. 단정한 검은 수트. 그가 걸어오는 자신을 보고 있었다. 표정이 없었다. 아니, 표정을 감추고 있었다. 이수현의 말처럼 — 감추는 사람.
그러다 서윤아가 가까이 다가가자, 현준이 아주 짧게 웃었다. 0.5초. 남들은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서윤아는 알아챘다. 그 웃음이 진심이라는 것도.
"예쁘다."현준이 아주 낮게 말했다. 마이크에 잡히지 않는 목소리로.
서윤아는 그때 처음으로 진짜로 웃었다.
그것이 결혼식의 가장 좋은 순간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이후 몇 년 중 가장 가까웠던 순간이기도 했다.
저녁 열한 시.
서윤아는 식탁에 혼자 앉아 있었다. 음식이 식어 있었다. 현준이 온다고 했다. 여섯 시에. 그러다 여덟 시. 그러다 열 시로 미뤄졌다. 마지막 문자는 아홉 시 반이었다.
서윤아는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먼저 자. 요즘 그 말이 인사가 됐다. 현준은 늦게 들어왔고, 일찍 나갔다. 식탁에 같이 앉는 날이 한 달에 손에 꼽았다.
그녀는 음식을 냉장고에 넣었다. 그리고 앉아서, 오랫동안 냉장고 문을 바라봤다.
"우리가 왜 결혼했지."혼잣말이었다. 대답이 없었다. 당연히.
이수현이 펜을 내려놓았다.
"결혼 이후에도 회사 관련 업무를 하셨어요?"
"공식적으로는 없었어요. 직함도 없었고요. 그런데..."
서윤아가 잠깐 멈췄다.
"비공식적으로는요?"
"현준이가 집에 가져오는 결정들이 있었어요. 말하자면 집이 연장선이었어요. 저녁에 자료 검토하고, 제 의견 말하고, 다음 날 현준이가 그걸 회의에서 얘기하는 식이요."
"그 과정이 기록된 게 있나요?"
서윤아는 고개를 저었다.
"없어요. 부부 대화는 기록하지 않으니까요."
혼인 기간 중 배우자가 경영 관련 자문, 의사결정 지원, 정서적 지지를 제공한 경우 — 이를 "재산 형성 기여"로 인정할 수 있는가.
법원 판례: 전업주부의 가사노동을 기여로 인정한 선례 다수. 그러나 비공식 경영 자문은 입증 책임이 원고에게 있음.
이수현의 전략: 비공식 기여의 입증보다, 공식 기여(창업 초기)의 가치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무게중심 이동.
"그럼 이렇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수현이 말했다. "결혼 이후의 기여를 증명하려다 막히는 것보다, 결혼 전부터의 기여가 현재 기업가치에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보여주는 게 훨씬 강력해요."
"그게 더 유리한 거예요?"
"그게 이 사건의 핵심이에요. F2P 모델은 2003년에 나왔어요. 그리고 그 모델이 지금 35조 짜리 회사의 수익 뼈대예요. 그 뼈대를 누가 설계했는가."
2003년의 내가 2025년의 회사를 만들었다. 법이 그걸 인정해줄 수 있을까. 아니, 그 이전에 — 현준이는 그걸 인정할 수 있을까.최민석은 쟁반을 들고 강현준 맞은편에 앉았다.
구내식당은 시끄러웠다. 직원들이 줄을 섰고, 웃으며 밥을 먹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들이었다. 이 회사가 지금 어떤 전쟁 중인지.
"召드세요."
"그래."
두 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밥을 먹었다. 최민석이 먼저 입을 열었다.
"직원들이 눈치채고 있습니다."
강현준은 수저를 내려놓지 않았다.
"뭘."
"소송 건. 포털에 올라온 기사들 다 봤을 거예요. 모른 척하는 거지, 모르는 게 아니에요."
강현준은 조용히 밥을 먹었다.
"흔들리는 분위기는 없어요. 아직은. 그런데 이게 길어지면..."
"길어지면?"
최민석이 말을 골랐다.
"핵심 인력 이탈이 시작될 수 있습니다. 불확실성이 커지면 사람들은 움직여요. 특히 외부에서 스카우트 요청이 들어오고 있는 시니어급들."
강현준의 젓가락이 멈췄다. 그는 식판을 밀어놓고 최민석을 바라봤다.
"누구."
"아직 이름을 말씀드릴 단계는 아닙니다. 제가 따로 얘기하고 있어요."
"잡을 수 있어?"
최민석이 잠깐 망설였다.
"급여로는요. 하지만 사람들이 원하는 게 급여만이 아닐 때가 있어요."
강현준은 그 말의 무게를 알았다. 안정. 신뢰. 내가 이 회사에 오래 있어도 괜찮다는 확신. 지금 그 확신이 흔들리고 있다는 뜻이었다.
회사를 지키려다 회사가 흔들린다. 소송이 경영권을 위협하는 방식이 지분만이 아니라는 걸, 나는 너무 늦게 생각했다.새벽 두 시였다. 현준이 들어왔다. 서윤아는 자지 않고 거실에 있었다.
"안 잤어?" "기다렸어."현준이 소파에 앉았다. 코트도 벗지 않고. 서윤아는 맞은편에 앉았다.
"할 말 있어?"서윤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어떻게 된 것 같아?"현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서윤아가 계속했다.
"우리가 언제부터 이렇게 됐는지 알아? 현준아." "..." "나는 알아. 2007년. 네가 나를 미팅에서 빼던 날부터야."현준이 고개를 들었다.
"그게 회사 얘기잖아." "우리한테 회사랑 우리가 따로 있었어? 우리가 만난 게 회사 때문이고, 같이 있던 시간이 다 회사였는데. 회사에서 내가 없어진 순간, 네 옆에서도 나는 없어진 거야."긴 침묵이 흘렀다.
"내가 잘못한 거야?"현준이 낮고 조용하게 물었다. 공격이 아니었다. 진짜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나는... 모르겠어. 잘못이라기보다, 네가 나를 안 봤던 것 같아." "봤어." "뭘 봤어?"현준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것이 두 사람이 마지막으로 긴 대화를 나눈 밤이었다. 이후로도 함께 살았지만, 그 대화의 깊이에 다시 닿은 적은 없었다.
박정우가 강현준 앞에 문서를 내밀었다.
"혼인 기간 중 재산 현황 정리안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특유재산으로 분류할 항목들을 확정해야 해요."
강현준은 문서를 훑었다. 그러다 손을 멈췄다.
"쟁점 구간. 2003년부터 2012년."
"네."
"그 9년이 문제군요."
"그 9년에 회사의 뼈대가 다 만들어졌으니까요."
강현준은 문서를 덮었다. 창밖으로 저녁이 내리고 있었다. 광화문 광장의 불빛들이 하나씩 켜졌다.
9년. 그 시간 동안 윤아와 나는 같은 방향을 보고 있었다. 그게 회사가 됐다. 그리고 회사가 커지면서 우리는 다른 방향을 보기 시작했다. 그게 이혼이 됐다. 너무 단순한 공식인데, 그 안에서 살 때는 왜 안 보였을까."한 가지 물어봐도 됩니까."
박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합의로 끝낼 수 있습니까."
박정우가 잠깐 멈췄다.
"언제든지 가능합니다. 다만 합의 금액이 문제겠죠."
"금액 말고요. 합의로 끝내는 게, 법정에서 끝내는 것보다 덜 해롭습니까. 회사에."
이번에는 박정우가 오래 생각했다.
"그건 금액에 달려 있어요. 회사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면, 합의가 모든 면에서 낫습니다. 언론, 직원, 투자자. 불확실성을 제일 빨리 없애는 방법이니까요."
강현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박정우는 느꼈다. 이 사람이 처음으로 다른 출구를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양측 변호인단이 처음으로 공식 서면을 교환한다. 박정우는 특유재산 논리를 전면에 세우고, 이수현은 기여도 입증 문서를 제출한다. 그리고 법원은 첫 번째 결정을 내린다 — 기업가치 감정인 선임. 35조냐 68조냐, 그 숫자를 누가 결정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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